유럽에 가겠다는 생각을 한 것은 그다지 오래지 않았다.
물론, 놀러가보고 싶다는 생각은 당연히 했다. 하지만, 난 동경만으로 돈을 쓸 수 있는 환경이 되지 못한다.

내게 수백만원의 돈과 3개월의 시간을 투자하게 만든 것은 어느 한 순간의 일이었는데,

그 일이 일어난 후 난 다음과 같은 글을 쓴 적이 있다.

===============================================================================================

 유럽은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선진국들이 많은 서부, 두 번째는 공산화되었던 동부, 마지막이 고대 유적의 남부다. 접한 바다, 인종, 문화가 서로 다르다.

 서부는 산업화 이후 대서양을 이용할 수 있게 되어 정치 문화적으로 세계를 주도했다.
  동부는 군사적으로 강국이나 문화적으로 항상 변방인데 그 이유는 고대에는 지정학적인 위치로 근대에는 공산주의로 인해 문화와의 접촉이 단절되었기 때문이다. 바다에 면해있지 못한 그들은 당대의 문명을 만나는 대신 아시아의 침략을 받았다.
 남부는 산업화이전까지 정치 문화적으로 세계를 주도했다. 산업화 이후에는 서부에 주도권을 빼앗겼는데, 교통수단이 더 발전되어 지중해의 이점보다 대서양의 이점이 더 컸기 때문이다. 더 빠른 배를 만들 수 있다면 지중해에 면한 남부보다 대서양을 면한 서부가 더 많은 나라와 지역을 만날 수 있다. 하지만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의 문명은 낙후되어 있었기에 변화는 경제 발전으로는 이어졌으나 문화 발전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발달된 문명은 발달된 문화에서 오고, 발달된 문화는 밸런스가 잘 잡힌 지정학적 위치와 다양한 문명에서 온다.
 다시 말하면 지형은 각 문명이 다른 문명에 살아남을 수 있게 필요하지만 다른 문명과 소통하기에도 충분해야 한다.

  이런 점에서 유럽의 지중해는 완벽하다. 넓지도 좁지도 않은 공간에 세 개 대륙이 걸쳐있다. 또한 유프라테스, 나일 강이 모두 지중해 근방에 위치해 있어 발달된 문명이 나타날 수 밖에 없으며 게다가 지형이 기가 막히게 서로와 서로를 차단해주어 다양한 문명이 서로 독자적으로 발생할 수 있게 했다. 하지만 그게 기술의 소통을 막을 정도는 되지 않았다. 나무와 돌, 동물을 이용하는 수준에서도 피레네나 알프스, 지중해는 큰 장벽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나무와 돌, 동물을 이용하는 수준에서 만들어진 문명이라면, 내가 한번 둘러볼 수 있지 않을까.

 유럽 남부라면 최대 크기로 생각해도 스패인부터 터키까지다.
 고대는 그게 한계였겠지만, 지금은 현대다. 비행기, 배, 기차를 이용한다면 충분하다.
 라틴아메리카나 아시아를 생각했을때 경비면에서 문제가 있지만 안전성, 고대 유산 그리고 문화적 경험을 생각했을때 어느 쪽이 더 값진 경험이 될 것인지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리고 제일 결정적인 선택은 바로 고대 문명의 뛰어났던 인간들이다.
 플루타르크스 영웅전의 그 사람들이 살았던 곳을 직접 가보고 싶다.
 스키피오가 있었던 로마, 한니발이 넘었던 알프스, 신화와 비극의 나라 그리스와 콘스탄티노플에 가고 싶다.
 이 작은 곳에서 작은 생각만 하며 사는 나는 정말 큰 것을 보고 싶다.

 바로 이 생각이 유럽 여행을 생각하게 된 계기다. 아직은 방법도 일정도 돈도 보이지 않는다.

================================================================================================

저런 글을 쓰게 된 것은,
한니발의 아버지인 하밀카르가 그의 숙적 로마를 물리치기 위해서 에스파냐 지방으로 그의 근거지를 옮겼다는 걸 알게되었을 때였다.

이건 역량의 레벨이 다르다.

우리나라 식으로 바꿔보자.
일본의 영주가 이순신에게 발리고, 조선을 정벌하기 위해 그의 근거지를 블라디보스토크 근방으로 옮겨서 그의 아들 대에서야 이루어질 사업을 위해, 여진족들을 정벌하고 세력을 싾았다고 보면 된다. (정확히 말하면 저거보다 훨씬 대단하다.)

또 하나 더 있다.

 로마인으로서 한니발과의 전투에 세 차례 참전해서 세 차례 패배하여 세 차례 도망갔던 사람, 귀족 자제라는 걸 제외하고는 어느 하나 갖춘 것없었던 스키피오. 그는 그 마지막 도망 이후 장군을 지원하여 에스파냐로 간다.

 난 꽤나 놀랬다. 세계에 대한 자세에 대해서 놀랬다. 부끄럽지만, 경주에 멈추어있었던 나는 서울에 오는 일조차도 큰 일이었다. 물론 스키피오가 에스파냐를 노서동과 성건동 정도 거리 감각으로 생각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세계를 대하는 감각은 전적으로 나와 달랐다.

 난 그럴 수 있을까.

 팀 프로젝트 수행조차도 버거워했던 내가 과거로 치면 사람들을 이끌고 북해도로 이동해서 기반을 싾자! 라고 하면 할 수 있을까? 얼마나 날 믿을 수 있을까?

 난 그런 것들을 알고 싶었다.



결과적으로 말하면,
난 스키피오와 한니발의 도시 카르타헤나에서 나의 모든 여행을 시작했고,
피레네 산맥을 직접 걸어서 넘었다.

물론 난 스위스를  넘을 때, 한니발의 길이 아니라 셜록 홈즈의 길을 따라 이동했고
내가 선택한 이탈리아의 지방은 트라시메노, 칸나이같은 옛 지방이 아니라 베네치아, 피렌체와 같은 르네상스 도시였다.

내가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넓이와 역량의 차이였다.
알레시아에서는 거의 울컥했었다.
과연 대단하다라는 걸 몸으로 느꼈으니 그것으로 좋은걸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신고

'[정리] 여행 2007'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사진 모음 - 1  (1) 2008.09.27
배를 타다  (0) 2008.07.11
유럽에 가겠다는 생각  (1) 2008.07.07
오베르 쉬르 우아즈 Auvers Sur Oise  (6) 2008.07.07
내 인생 최고의 시간  (3) 2008.05.30
이탈리아어  (0) 2008.05.30

댓글을 달아 주세요

  1. christian louboutin uk 2013.04.29 07:52 신고 Address Modify/Delete Reply

    향토 음식점 육성에 있어서의 문제점

티스토리 툴바